언론보도

전남일보 <여왕의 침묵과 진짜 어른> -김강- 등록일 : 2017-03-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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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침묵과 진짜 어른

도당처럼 보인다. 마치 떼를 지어 어두운 일을 꾸미려는 무리와 흡사하다. 동굴같이 깊고 칙칙한 골목에는 독선과 광기의 깃발이 칼춤을 추어대고, 예견된 불화를 포고하듯 짙은 땅거미는 시나브로 도시를 집어삼킨다.

이 얼마만인가. 모처럼 자애한 미소를 내보인 '탄핵의 여왕'은 우아하게 사뿐거리며 감옥의 담장 너머로 앙심의 속내를 감추려한다. '친박의 용사'들은 남모를 대성통곡으로 사나워진 여왕의 심기를 친히 달래주고자 '별 셋 타운'에 꾸역꾸역 모여들고, 비장한 일부는 태극기를 이불삼아 날밤을 새웠다. 3월13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선고를 받고 마지못해 퇴거한 지 겨우 이틀째 되던 날, 욕망의 주사가 공공연히 거래된다는 헬조선의 수도 남쪽 한 모퉁이의 탁하기 짝이 없는 희뿌연 영상이다.

여왕 앞에 다시 조아린 용사들은 꽃다발을 꺾어들지는 않았지만, 저마다의 가슴에는 복수의 응전을 벼르는 날선 비수 하나쯤은 꽂고 왔음이 분명할 것이다. 4년 전, 푸른 지붕의 관저에 세 침대와 함께 입방하기 전, 좋은 대통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약했던 그분이 헌재의 선고 후 선지자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또 다시 우주적으로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국민의 눈에는 탄핵이, 파면이 매우 당연하다. 국법의 수호자이자 오욕된 역사의 심판자인 헌재가 8인의 만장일치로 내린 판결에 '나는 절대불복'으로 격하게 돌변한 셈이다. 자신이 했던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중병에 걸린 가련한 여왕! 그 언제부터였던가. 한때 뽑기의 여왕은 백성에게 절대로 머리를 굽히지 않는 것이, 비행을 일삼더라도 늠름하게 버티며 사과하지 않는 것이 제 왕실의 법도인 것인가. 아니면 선대로부터의 비극적 유산인 것인가. 그분은 국민이 부여한 국가권력을 사익과 치부를 위해 오남용했고, 그로 인해 국정농단과 헌정질서 위반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유로 마침내 파면을 선고받았지만, 불복의 침묵과 오만한 행보로 국가와 국민을 향한 최소한의 품격은 고사하고 예의마저 저버린 것이다. 여왕은커녕 어른의 자질조차 제대로 지니지 못한 것이다.

최근 높은 시청률을 구가중인 TV드라마 '김과장'에 나오는 편의점 알바생 민지는 SNS를 통해 연대와 집단소송을 이끌어 내며, 한국의 어른을 솔직하게 꾸짖는다.

"진짜 구리다… 어딜 가든 가관이에요. 당신네 어른들요. 하는 짓이라곤 애들 돈이나 떼어 먹고, 희롱하고 때리고, 맨날 어설픈 충고질이나 하고. 자기네들도 그렇게 못 살았으면서. 결론은요, 이 세상엔 진짜 어른보다 나이만 처먹은 사람들이 더 많구나, 나는 그렇게 나이들면 안 되겠구나. 그거예요. 딱 보니까 아저씨도 예외는 아니에요. 더 하면 더 했지!"

가슴속까지 후비는 가히 '사드'급 경멸이다. 나이어린 어른에게 뒤통수 맞고, 엉겁결에 얻어 마시는 충격의 사이다 맛이다. 그녀에게 어른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막가파 안하무인이었다. 가짜 어른에 대한 회의와 함께 진짜 어른을 갈구한다. 태극기로 위장한 우리사회의 민낯이자 곧 나의 민낯이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진짜 어른은 미래 세대를 위해 비겁하고, 불평등하고, 부정과 부패에 찌든, 부조리한 현실에 의연히 맞서는 자들이다. 그래서 촛불처럼 꺼지지 않고 분노하라!


김 강

호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