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아Q와 곤충사회 등록일 : 2017-06-2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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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 같은 놈"

오메, 허벌나게 거시기하다. 철부지들이 맨땅에 드러누워 막무가내로 부려보는 협박성 성깔인 듯하다. 혹은 어찌하다 소외된 울분에 대상과 의미를 잊은 채 다짜고짜 내뱉는 상스런 욕지거리와 다름없다.

한때 전체주의 권력의 비호아래 호가호위했지만, 지금은 촛불덕택에 자유스런 한국의 야당으로 계면쩍게 변신한 모 정당의 시당위원장이 현직 대통령을 인유하는 철없는 말투다. 듣기에 민망하고 맥락의 갈피를 헤집기에도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에 뒤질세라 '바퀴벌레'가 또 기어 나온다. 충성스런 조폭단속과 기회성 입법행위와 방자한 도민구제에 브레이크 없이 줄창 헌신하다가 이제는 누군가가 하는 수 없이 방생한 대어라도 낚아보려는 한 정치어른의 막나가는 기행과 어품도 어이없다 못해 '천박'하다.

대체 왜이러실까. 어쩌다 요지경에 이르렀을까. 민주와 인권의 시대를 다시 대면한 충격과 상실의 초조함인가. 아니면 독선적인 성장과 미성숙한 인격에서 비롯된 정치적 우월감에 대한 판타지용 착각인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관심병 오덕후들의 '인정투쟁' 수단이던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시에서 다음처럼 설파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다" 시인에게 어른이 아이를 본받아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정직한 자연을 찾아볼 수 있는 순수함이다. 공존하는 세상을 향한 경건한 자세다. 처음처럼 가슴에 품었던 순진한 초심은 운때 좋은 이권과 야심으로 살을 찌우고, 마침내 오만과 편견을 셀프리필한 '진격의 거인'으로 우뚝 나선다. 독재정권으로 가름된 세력들이 손톱아래 가시처럼 성가시게 보여준 생생한 증표다. 그들이 절체절명의 슬로건처럼 읊조렸던 국가안위와 국민안녕은 누구의 보험이었던가. 아니 치졸한 독자생존을 위한 변신의 계제였던가.

중국의 사상가이자 문필가인 노신은 '아Q정전'이라는 소설에서 과거의 악습과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국인들의 속물주의 근성을 아Q라는 인물을 통해 고발한다. 아Q는 모든 문제에 대해 마구잡이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기막힌 생존필살기를 지니고 있다. 그 유명한 '정신승리법'이다. 모욕을 받아도 저항할 줄 모르고, 잘못을 저질러도 뉘우칠 줄 모른다. 오히려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정신적 승리'로 탈바꿈한다.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누가 뭐래도 내 갈 길을 가련다"는 의기양양 심리처방법이다.

요새 하이에나마냥 들판을 헤매는 일부 야인들의 볼썽사나운 처신은 아Q의 정신승리법을 굶주린 가문을 살리려는 투쟁의 도구로 삼은 듯해 그지없이 안쓰럽다. 비록 국가가 동서로 쪼개져도 나의 정치생명은 유구할 것이라는 적자생존의 맹신이다. 그 성장의 뿌리가 혐오와 독설이라니 참으로 개탄할 상황이다.

어디 독한 막말이 비단 정치인들만의 장신구던가.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에는 지구를 침공했던 외계파충류집단을 다룬 열방미드 V의 후속편을 예고하는 듯한 벌레인간들이 등장한다. 유모차 맘충, 시댁우선주의 한(국)남(편)충, 중고생 급식충, 할아버지 틀(니)딱(딱)충, 탕수육을 부어먹거나 찍어먹는 부먹충과 찍먹충이 그들이다.

개와 돼지가 살았던 가축나라가 곤충사회로 퇴화중이다. 타인을 폄하하는 막말이든 인기를 충전하는 사이다발언이든 당하는 사람에게는 물리적 폭력이다. 큰 입을 함부로 놀리다 잡혀 박제가 된 농어의 교훈을 질근질근 곱씹어본다.